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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부모님을 이해하기 시작한 순간

by totobake 2025.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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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여성이 통화하는 모습

서른 살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부모님이 왜 그렇게 '쓸데없는' 걱정을 하셨는지를.

아침 7시의 전화

"밥은 먹었냐?" 아침 7시에 울리는 엄마의 전화. 예전에는 정말 귀찮았다. 바쁜 아침에 왜 이런 당연한 걸 묻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서른 살 직장인이 밥을 안 먹고 다닐 리 있나 싶었다.

 

그런데 몇 달 전, 야근이 연달아 계속되면서 아침을 거르는 날이 늘었다. 점심도 제대로 못 챙겨 먹고, 저녁은 편의점 도시락으로 때우는 날들. 체중이 5kg이나 빠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엄마의 "밥 먹었냐?"는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다는 것을.

돈에 대한 집착, 그 이유

"전기 끄고 다녀라", "물 아껴 써라", "이런 걸 왜 사냐?" 부모님의 끝없는 잔소리가 어린 시절 나에게는 그저 구두쇠같이 보였다. 친구들 집에서는 에어컨을 마음껴 틀고, 전등을 켜놓고 다니는데 우리 집만 유난히 검소했다.

 

첫 월급을 받고 독립한 후에야 알았다. 전기요금 고지서를 받는 순간의 그 무게감. 매달 나가는 관리비의 부담감. 갑자기 고장 난 세탁기를 고치는 데 드는 비용. 부모님이 그토록 아끼셨던 이유가 바로 이거였구나.

 

하나하나 스스로 책임져야 할 때가 되어서야, 부모님의 절약 정신이 우리 가족을 지켜온 든든한 울타리였다는 걸 깨달았다.

인간관계에 대한 조언

카페에서 대화하는 여성들

 

"그 친구와 너무 자주 만나지 마라", "사람들과 적당히 거리를 두어라." 부모님의 이런 조언이 예전에는 소극적이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나는 사교적이고 활발한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부모님은 항상 조심스럽게 행동하라고 하셨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이해가 갔다. 처음엔 좋아 보였던 동료가 시간이 지나면서 본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들. 너무 쉽게 친해졌다가 나중에 상처받는 일들. 부모님은 이미 인생의 쓴맛을 다 맛보시고, 자식이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언해주신 거였다.

건강에 대한 잔소리

"운동해라", "일찍 자라", "술 그만 마셔라." 젊었을 때는 이런 말들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밤새워도 다음날 멀쩡했고, 며칠 술을 마셔도 금세 회복됐으니까.

 

하지만 30대에 접어들면서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계단 몇 개만 올라도 숨이 차고, 술 한 잔만 마셔도 다음날 온종일 힘들었다. 작은 감기에도 회복이 더뎌졌다.

 

그제서야 부모님이 왜 그렇게 건강에 대해 말씀하셨는지 알겠더라. 건강을 잃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는다는 말이 이런 의미였구나.

미래에 대한 걱정

"적금은 넣고 있냐?", "보험은 들었냐?", "결혼 생각은 언제 할 거냐?" 이런 질문들이 스무 살의 나에게는 너무 재미없고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지금 당장 즐겁게 사는 게 중요한데, 왜 자꾸 먼 미래 이야기만 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요즘 들어 나도 모르게 적금 금리를 찾아보고, 보험 상담을 받고, 노후를 걱정하게 된다. 부모님이 그토록 강조하셨던 '준비'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사랑의 다른 이름, 잔소리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님의 모든 '잔소리'는 사랑의 다른 표현이었다. 직접적으로 "사랑한다"는 말은 잘 안 하시면서도, 매일매일의 작은 관심과 걱정으로 사랑을 표현해오셨던 거다.

 

나이가 들수록 부모님과 닮아가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친구들에게 "밥 먹었냐?"고 묻고, 후배들에게 "몸조심해라"라고 말하는 내 모습에서 부모님의 모습이 보인다.

이제는 내가 걱정하는 시간

최근에는 내가 부모님을 걱정하게 됐다. 전화 목소리에서 피로를 느끼면 건강이 걱정되고,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지 못하시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다. 어느새 돌봄을 받는 사람에서 돌봄을 주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부모님을 이해하기 시작한 지금, 예전보다 더 자주 안부 전화를 드린다. 그리고 말한다. "아빠, 엄마, 그동안 잔소리라고 생각해서 죄송했어요. 이제야 알겠어요. 그 모든 게 사랑이었다는 걸."

 

어쩌면 부모님을 진정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내가 어른이 되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언젠가 내 아이에게도 똑같은 '잔소리'를 하게 될 거라는 걸, 이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세월이 흘러 이제야 깨달았다. 부모님의 사랑은 때로는 잔소리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걱정이라는 모습으로, 때로는 참견이라는 형태로 우리 곁에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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